생각하다가Part 1

우리는 누구의 기준으로 그들을 가난하다고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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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늘 비슷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깨끗한 물이 부족한 마을, 오랜 시간을 걸어서 물을 길어오는 아이들,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없는 지역, 낡은 집과 부족해 보이는 생활환경 ...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을 가난하다고 여기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그들을 가난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걸까.

우리가 수도, 전기, 병원, 학교가 있고, 자동차와 인터넷이 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돈을 주고 구입하고,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바라볼 때 그들의 생활이 불편하고 부족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그들의 삶의 질이 낮다는 뜻일까? 그들은 우리가 그곳에 가기 훨씬 전부터 자신들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살아왔다. 물을 구하기 위해 먼 거리를 걷는 것도, 자연환경에 맞춰 집을 짓는 것도, 가족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도 오랜 시간 그들의 삶을 구성해온 방식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굶주림도 있었을 수 있고, 질병 때문에 치료받지 못한 채 죽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 전체를 안타까운 삶이나 실패한 삶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이 가진 물건의 개수나 우리가 생각하는 편리함의 정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온 삶의 방식을 '발전'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 기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가난하다'고 규정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삶을 그대로 두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깨끗한 물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어야 하고, 치료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받고 싶은 사람에게 교육의 기회가 있어야 하고, 자신의 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에게도 그 선택이 열려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선택이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라고 생각한다. 외부에서 온 사람이 한 공동체를 바라보고 먼저 문제를 정의한다면

“당신들은 물을 얻기 위해 너무 오래 걷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집은 너무 열악합니다.” “당신들의 생활방식은 비효율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해결책을 그들에게 주입한다면

"우물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신식 건물을 지어드리겠습니다." "제대로 된 제도가 없군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좋은 의도일 수 있다.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크게 개선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과정이 항상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점점 '선택권을 준다'는 표현조차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그들의 삶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발견하고,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가능하면 그들 내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어느 날 공동체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 속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물을 구하러 가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드니까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깨끗한 물을 구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그때는 외부의 기술과 자원이 필요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 시작점과 결정권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흔히 원조에 대해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한다. 우물의 예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물을 하나 뚫어주고 떠나는 것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우물을 만들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지속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충분하지 않다.

외부인이 찾아와서 “너희에게 우물이 필요하니 우물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한다면 여전히 무엇이 필요한지를 결정한 사람은 외부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는 것'과 '가르치는 것'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먼저 듣고, 그것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필요한 부분, 부족한 부분을 돕는 것이다.

우물을 원하는 공동체에는 우물을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장비를 연결해주고, 학교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에는 단순히 건물을 지어주는 것을 넘어 교사를 키우고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만드는 것이다. 병원이 필요하다면 병원 건물 하나를 세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료인을 양성하고 의약품을 공급하고 시설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방법까지 지역 안에 남아야 한다.

좋은 도움의 결과는 결국 외부의 도움이 계속 필요한 상태가 아니라, 외부의 도움이 점점 필요 없어지는 상태여야 하지 않을까. 물론 모든 상황을 이렇게 이상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났거나 지금 당장 깨끗한 물이 없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먼저 물을 공급해야 한다. 감염병이 퍼지고 있는데 지역이 스스로 의료체계를 만들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사람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는 외부의 즉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긴급한 구조와 한 사회의 장기적인 발전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살리는 것과 그 사람의 삶을 대신 설계하는 것은 다르다. 결국 내가 생각하게 된 것은 '개발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문제를 정의하는가. 누가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 결정하는가. 누가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하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더 나은 삶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더 나은 삶'이 그 사람에게도 같은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현대적인 집에서 사는 것이 반드시 더 좋은 삶이라는 보장도 없고,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보장도 없다. 반대로 전통적인 삶이라고 해서 반드시 아름답게 보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변화를 원한다면 그 변화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좋은 개발의 모습을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외부인이 한 공동체를 바라보며 “당신들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바라보며 “우리는 이렇게 살아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외부인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부족한 기술이나 자원, 지식과 연결을 제공하는 것. 결국 도움의 목적은 그들을 우리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단순한 '우리는 정말 아프리카 사람들을 가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며 가난하다거나 발전하지 못했다고 말하기 전에, 나는 먼저 그 사람의 기준으로 그 삶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누군가를 돕겠다고 나설 때, 내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있다고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진짜 도움은 무엇인가를 가져다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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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비전을 발견하고 이루어가는 모든 경험을 함께하고자 하는 비전 경험 개발자입니다. 비전 경험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플랫폼을 개발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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